기아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 3위 인도를 글로벌 핵심 거점으로 낙점하고 생산과 연구·개발(R&D), 판매망을 아우르는 전략 강화에 나섰다. 인도를 단순한 내수 생산기지를 넘어 아시아·태평양, 중동, 중남미를 연결하는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북미 시장의 관세 리스크에 대응해 신흥시장 공략과 생산기지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전략으로 관측된다.
16일 기아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지난해 38만6000대에서 올해 43만1000대로 1년 동안 약 11.6% 증가했다. 국내외 공장을 통틀어 가장 가파른 증설 수치다.
기아의 인도 공략 선봉장에는 현지 전략 모델 '시로스'(Syros)가 있다. 시로스는 전장 4m 이하의 콤팩트 SUV(스포츠유틸리티차)지만 실내 공간의 효율성과 첨단 사양은 차급을 뛰어넘는다.
시로스는 인도 특유의 주행 환경을 철저히 반영했다. 2550㎜의 휠베이스를 바탕으로 뒷좌석 슬라이딩 및 리클라이닝 기능을 적용해 차급 최고 수준의 거주성을 확보했으며 전·후석 통풍 시트와 12.3인치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가성비 중심의 인도 시장에서 프리미엄 콤팩트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상품성은 현대자동차그룹 인도기술연구소(HMIE)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서 비롯됐다. 하이데라바드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인도의 거친 도로 환경과 기후, 인프라를 분석해 최적의 주행 성능을 도출해냈다. 좁은 골목길이 많은 현지 특성을 고려해 회전 반경을 최적화하고 높은 지상고를 확보해 비포장도로 대응력을 높였다. 기아는 인도에서 검증된 시로스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이 모델을 아태, 중남미, 아중동 등 글로벌 신흥 시장으로 적극 수출할 계획이다.
기아는 생산량 증대에 발맞춰 판매망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각각 현지 판매 법인을 신설했다. 인도를 생산 및 R&D 거점으로 삼고 신설 법인들이 포진한 동남아시아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남방 벨트' 전략의 구체화다. 과거 일본 브랜드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아세안 시장에서 기아는 인도의 생산 효율성과 기술력을 지렛대 삼아 점유율 확보에 나선다.
인도기술연구소는 인도의 3륜차 전동화 경험을 바탕으로 아세안 지역에 적합한 라스트마일 모빌리티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연구소는 TVS 모터 컴퍼니와 협력해 전기 3륜차 콘셉트 'E3W'를 선보이는 등 현지 맞춤형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도는 이제 단순한 판매처가 아니라 신흥 시장용 모빌리티 솔루션을 공급하는 '마더 플랜트'(MotherPlant) 역할을 수행하게 된 셈이다.
기아는 지난해에만 인도 공장 가동률과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 3047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이보다 75.2% 증가한 5338억원을 인도 공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예정된 전체 투자금(4조3699억원)의 12.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단일 국가별로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다.
기아가 인도 시장에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에는 북미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기아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114조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9조781억원으로 전년 대비 28.3% 급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매출 원가가 수익성에 악영향을 줬다.
기아는 북미 시장의 관세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인도를 중심으로 한 신흥 시장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해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인도 공장의 생산 능력을 끌어올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고단가 SUV인 시로스의 비중을 높여 북미에서의 손실을 만회한다는 복안이다.
정성국 기아 전무는 2025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이머징 마켓은 중국과의 경쟁이 심하지만 강한 SUV 라인업을 확보하고 있다"며 " 아태 지역을 중점 지역으로 시장 확대를 고려 중이며 이머징 마켓의 생산 베이스를 통해 중국과의 원가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