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재인상하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일본이 한 발 앞서 대미투자를 결정하면서 미국에서 현대차·기아의 가격경쟁력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미투자 특별법 처리 지연을 이유로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재인상하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일본이 한발 앞서 대미투자를 결정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HEV) 판매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지만 관세가 다시 인상될 경우 일본 토요타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일본의 대미투자와 관련한 첫 번째 프로젝트 3개를 발표했다. 가스 화력발전, 미국산 원유 수출 인프라 정비,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등 3개 분야다. 일본은 지난해 관세 합의 당시 미국에 5500억달러(약 796조원)를 투자하기로 결정, 이번 프로젝트는 이 중 360억달러(약 52조원)에 해당한다.
일본이 대미투자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한국을 향한 미국의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의 대미 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문제 삼으며 한국산 자동차·의약품과 모든 상호관세 품목 등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선언했다.
'관세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현대차·기아의 부담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관세 부과로 발생한 비용은 7조2000억원 규모로 양사 합산 매출 300조원의 2.3%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11조4679억원으로 전년 대비 19.5% 감소했고 기아 역시 28.3% 줄어든 9조781억원을 기록했다.
관세율이 25%로 환원될 경우 연간 관세 부담은 8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올해에만 17조8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조 단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 일정이 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 HEV 라인업 강화와 현지 생산을 통해 판매 성장세를 이어갈 방침이다. 사진은 기아 텔루라이드의 모습
북미 공략의 핵심인 HEV 가격 경쟁력 약화도 문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전년 대비 48.8% 증가한 HEV 33만1023대를 판매했다. 지난 1월 HEV 판매량은 현대차가 1만4316대, 기아가 1만3173대로 전년 대비 각각 51.9%, 83.8% 늘었다.
현재 미국 HEV 시장 점유율은 일본의 토요타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토요타는 미국 판매 차량의 80%를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어 관세 대응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미국에서 HEV 판매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지만 일본과의 관세 격차가 10%p까지 벌어질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판매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은 당분간 HEV 라인업 강화와 현지 생산 확대를 통해 관세 불확실성에 대응할 방침이다. 상반기 내 전기차 전용 공장인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HEV 혼류 생산을 시작한다. 첫 번째 생산 모델로는 기아 스포티지가 유력하다. 기아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텔루라이드, 셀토스 등을 미국에 선보이며 제품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정성국 기아 IR·전략투자담당 전무는 지난달 28일 2025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시장은 전기차 보조금 종료 등 환경 규제들이 변하면서 전기차 판매 비중이 줄고 그 자리를 내연기관차와 HEV가 대체하는 양상이 될 것"이라며 "올해 텔루라이드, 셀토스 HEV 모델 추가로 미국에서 25만대 이상의 HEV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